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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목적

 

주님의 소원을 풀어 드리기 위함이다. 즉,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이 크게 부흥되어, 한국교회가 속히 플러스 성장되고 세계 선교를 지금보다 더 잘 감당할 뿐 만 아니라,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여 다시 오실 주님 맞이할 준비를 잘 하기 위함이다.-

 

훈련사역 동기

 

김종수 목사의 1년 내 배가부흥 전도훈련

중앙대학을 졸업하고 경기고등훈련원 교사로 근무하였고, 퇴직한 후 사업을 하였다. 그 후 영·육·환경적으로 죽음에 직면하게 되었는데, 대학 3학년 때 6개월 정도 출석했다가 중단했던 교회를 안수집사인 친구의 전도를 받고 다시출석하게 되었다. 그 후 본 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되었고, 치유도 받았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보답하시 위하여 주의 종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예장 합동측 신훈련원인 사당동 소재, 총신대학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목회학 석사학위(M. div. 문교부 등록)를 받고, 그 후 목사 안수도 받았다.

 

신대원 졸업반 때 초빙 받은 서울 소재 두 교회 중, 한 교회를 선택해야 할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위해 춘천에 있는 대한수도원에서 일주일 간 금식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전라남도 함평군 손불면 석창리 석계부락에 1985년 7월7일 석창중앙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 곳은 바닷가이면서 농사도 짓는 지역이었다. 하루에 3회 버스를 운행하는 시골이었고 우상숭배가 강한 곳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개척 6개월 만에 장년 50명, 중고등부 20명, 유초등부 50명으로 총 120명이 되었다. 그때 교인들이 예배당이 좁아 불편하다고 아우성치며, 예배당 건축하자고 찾아왔다. 그러나 나는 “개척 6개월에 무슨 예배당을 짓는 단 말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세요.” 하면서 돌려보냈다. 교인들이 다음 날 또 찾아왔다. 다시 돌려보냈다. 그러나 세 번째 찾아 왔을 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예배당을 건축하려면 기도도 많이 해야 하고 돈도 있어야지, 입만 가지고 예배당이 건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돌아가세요.” 하면서 교인들을 설득하였다. 그 때 “전도사님, 우리가 기도하면서 건축헌금을 작정했어요.”라고 하였고 그 뜻을 꺾지 못해 결국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결정되었다. 당시 목회자 사례비는 3만원 이었는데, 건축헌금 작정자 중 제일 많은 집사 보다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생각의 감동이 와서 100만원을 작정하였다. 목회자가 성도에 비해 예배당이 비좁은데 예배당 건축을 싫어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예배당 건축은 성도들에게 큰 복을 받을 기회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상황은 달랐다. 마을에 교회를 개척했는데, 가진 돈을 다 교회에 바치고, 쌀을 퍼다 주니까 집집마다 지갑 단속을 잘 하고, 광독을 조심해야 한다고 동네에 비상이 걸렸다는 말이 돌고 있었다. ‘하나님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예배 시간마다 “여러분, 헌금 할 때에는 반드시 가정에서 의논하여 하세요. 될 때에는 감사함으로 하시고, 안 되어도 성경적이니까 일단 감사하시고, 그래도 꼭 헌금하고 싶으시면 한 달 동안 기도하고 의논해 보세요. 그 때 되면 헌금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또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응답될 때까지 하세요. 가정이 평안하여야 교회도 평안하고 여러분들이 교회 다니기 좋습니다. 그래야 전도하기도 좋고 또 여러 면에서 좋을 것 같습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고 응답 받고 하세요.”라고 광고하였다. 그래서 건축하자는 것을 김 목사가 거부한 이유이다. 그러나 교인들의 간절함으로 결국, 적 벽돌로 51평의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개척 2년 만에 헌당식과 임직예배를 드리게 되었으며, ‘교회 창립 3주년 감사 총동원전도’ 주일날은 동네 주민 98%가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 후 다른 지역에서 목회를 하다가 1996년 전남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면 소재지), 대치중앙교회에 제 23대 목회자인 담임 목사로 부임하였다. 당시 교회 역사는 70년이고 예배당은 250석 정도였는데 장년 출석은 80명 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교회가 아주 썰렁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 때 ‘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우리 예수님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 까’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 졌다. 그래서 빨리 교회를 채워야겠다는 감동이 왔고, 대치중앙교회도 총동원전도를 하고 싶었다. 교회를 빨리 부흥시키려면 총동원전도를 해야 하고, 총동원전도를 잘 하려면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받고 시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철야 기도를 시작하였다. 기도를 시작 한지 1년 반 만에 응답을 받았으며 당회도 통과하고 공동의회에서도 통과되었다. 초청장은 1,000매를 제작했지만,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다 보니, 모자라서 1,000매를 더 제작하여 총 2,000를 가지고 전도했는데 승락서는 1,116명을 받게 되었다.

 

총동원전도 주일 ‘이웃 초청 큰 잔치’는 1997년 12월 7일 밤 7시에 한 차례 예배를 드렸는데, 불신자 350명 참석했다. 총동원전도 주일 후의 부흥 결과이다. 총동원주일 다음 첫 주에 새 가족 이십 명이 등록했다. 둘째 주에 열 명, 셋째 주에 열 명, 넷째 주에 여섯 명, 그리고 그 다음 다음 주 여덟 명 등록, 이렇게 계속 등록하여 두 달 여 사이에 75명의 새 가족이 등록했다. 주님의 아파하 실 마음을 생각하면서 전도하여 예배당을 채우려는 마음을 예쁘게 보셨는지 주님의 은혜로 장년 출석 80명에서 155명으로 거의 두 배로 배가부흥하게 되었다.

또 이 일이 교계에 알려 지면서 전도훈련 강사가 되었고, 15년 동안 2,300여 교회를 전도 훈련으로 섬기게 되었다. 전도에 관한 책도 2권, 교재 13권 저술하였다. 전도학 박사 학위도 연구해 보란 권유도 몇 번 받았는데, 학위도 귀한 일이라고 생각 하였지만, 그러나 눈과 비를 맞으면서도 전도 훈련하다가 사역 기간 중에 병원 신세도 세 번 질 정도로, 전도 훈련에 온통 미쳐있는 상태이었기에 단 하루도 전도 훈련 외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주 7-8 교회를 섬기면서 보니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주님께 “주님. 저는 겨우 150여 명 모이는 면소지 교회에서 목회하는 보잘 것 없는 목사인데, 어떻게 이렇게 귀하게 사용해 주십니까?” 하고 여쭈어 보았다. 주님의 대답이시다. “나에게 소원이 있다.” 그것은 많은 영혼이 구원 받고 주님의 몸된 교회들이 크게 부흥되어, 한국교회가 속히 플러스 성장되고 세계 선교를 지금보다 더 잘 감당할 뿐 만 아니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 맞을 준비를 잘 하는 것이었다.” 김 목사는 주님께서 주신 사명으로 알고,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 기도했고, 또 집회 때마다 전 성도들에게 통성 기도를 시켰고, 또 어느날 “주님. 미자립 교회(장년 출석 50명 미만)는 무료로 돕겠습니다.”고 서원했다.

 

한국교회 플러스 성장 위해 5교회를 선정 배가부흥전도 훈련하고 나서, 6개월 후의 결과이다.

서울성산교회 : 장년 출석 300명에서 700명 출석

갈보리 교회 : 장년 출석 250명에서 550명 출석

광주풍성한교회: 장년 출석 30명에서 60명 출석

김해참좋은교회: 장년 출석 3 5명에서 72명 출석

수지 OOO교회 : 장년 출석 50명에서 75명 출석

 

너무 너무 감사했다. 그러나 한국교회 플러스 성장을 위해서는 해 마다 배가부흥이 되어야 하는데, 2년 후에 점검해 보니까, 700명에서 350명으로, 550명에서 350명으로 줄어 든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되었다. ‘되게 하면 되는 것인데, 왜 다들 안 되게 했을까?’ 전도 열정이 계속 되지 못했고, 일단 정착까지는 되었으나 양육과 일꾼 세우기가 되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러나 만약‘ ’아바드’를 10년 전에 만났더라면 전도 사역에 엄청난 탄력이 붙었을 것이다.

 

그 후 미자립 교회를 무료 훈련으로 돕겠다고 서원했던 일이 자꾸 생각나서, 당시 12주 훈련비는 1인 땅 15만원 씩 받고 있었으나, 국민일보에 ‘12주 무료 전도 훈련’ 이라고 전면 광고를 했다. ‘무료이니까 적어도 200명 이상은 오겠지, 그러면 주님께 서원한 것을 조금은 갚은 것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20명 밖에 오지 않았다. 돈이 얼마 들었는데 이럴 수 가 있나 싶어 할 말을 잃고 있었다. 그 때 옆에 있던 목사님이 “목사님. 공짜라 하면 우습게 보는 거예요.” 라고 했다. 아무튼 약속대로 평일에는 다른 교회 훈련 때문에,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4시까지 12주간 훈련을 했다. 훈련 중, 교회 부흥이 너무 안 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하려다, 무료 훈련 광고보고 와서 훈련받고 새 힘을 얻고 5명이 등록, 부흥했다고 좋아했는데 얼마 전애는 CTS에서 설교하는 것을 보았다. 그 후 김 목사는 강사 사례비도 많이 받는 교회가 많은 데, 무료로 해도 잘 되지도 않는 미자립 교회 신경 쓸 필요가 있겠는가, 하면서 관심에서 멀리 해 버렸다. 그런데 ‘미자립 교회 무료 훈련’을 중단한 후부터, 김 목사에게 주님은 징계의 체찍을 드셨다(후에 깨닫게 된 사실임). 사역은 막히기 시작하고, 홀로 개척한 교회가 6개월 만에 장년 50명 출석과 풍부한 재정 등으로 날로 계속 부흥하여, 주위 목회자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교회가 급속하게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또 건강까지 악화되어 전도 훈련 사역과 목회를 조기 은퇴로 내려놓게 되었다.

 

그 후 노인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매일 예배를 인도했으나, 미자립 교회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개척 3년, 장년 30여명 출석하는 개척교회인 순복음교회에 출석했는다. 10여연 전 교회성장(교회성장연구소 소장 명성훈 박사)에 ‘전도! 할 수 있다.’는 전도 설교를 기고한 일이 있었는데, 이 글을 본 담임 목사님께서 여의도순복음교회 농어촌선교회 전도특공대들이 2개월에 1회씩 전도하러 오는데, 그 때마다 전도설교를 부탁받고 설교했는데, 일 일로 이나여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특공대 훈련 설교했으며, 2회 더 초청 예약 받았다.

 

그 후 사회복지사를 그 만 두고 1년내 배가부훙전도 훈련 사역에 매진하려 했는데, 그 때 또 김 목사는 건강과 환경, 재정 등 감당하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시 취직하여 전도하는데 매월 100만원 전도 사용하려 했으나, 이번엔 나이가 먾다고 거부 당했다. 그래서 협동 목사로 교회와 병원 교회에서 2회씩 하던 설교나 하고, 틈틈이 전도하다가 주님이 부르시면 천국가기로 결정했다. 아무리 사명이라 하더라도 현실이 도저히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어 모든 것을 다 포기한 것이다.

 

그런데 그 때 주님께서 “너. 진짜 못하겠느냐?”고 물으셨고, 김 목사는 :진짜 못하겠습니다.“고 대딥했다. ”네가 진짜 못한다고 할 따가 내가 일 할때이다.“ ”그러면 주님이 하십시오. 종은 순종만 하겠나이다.“ 김 목사는 순종만하기로햇고, 순종할 힘을 얻기 위해 성전에서 매일 3회씩 기도하다가 ‘아바드’를 마나게 되었다. ‘아바드’를 접하고 나서 잘 배우기 위해 진주에 한 달 방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전도와 정착의 후속인 양육과 일꾼 세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 예배를 더 잘 드리고 ‘아바드’를 더 잘 배우면서 수시로 교회에 나와 기도도 하고 교회를 더 가까이 하려고, 교회 옆에 1년짜리 방을 얻어 이사했고, 새 가족으로 등록했다.

이것은 주님 안에서 내 자신이 살아 있는 의미이고,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는 주님의 칭찬과 가장 큰 면류관을 받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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